[@ㅋㅋㅋ]
?? 뭔소리래 백제 의자왕대에는 신라의 주요성을 포함한 40여 성을 함락시키고 김춘추의 사위가 지키는 대야성까지 함락시켜서 신라 수도 코앞까지 갔었다. 외교적으로도 고구려하고 연합해서 신라를 더 압박했고 오히려 신라가 더 통일 능력은 없었지만 외세를 끌어들여 승리를 얻어낸거고 이후 매소성 전투 등으로 당나라 군대의 더이상의 남진은 막았지만 고구려 영토 대부분은 발해가 세워지기 전에 빼앗겼 발해가 세워지지 않았어도 신라는 그 지역까지 확장할 능력이 없었다. 그런 영토는 고려시대에도 이어지고 조선대에도 고구려 영토는 회복못함 그나마 매소성 전투에서 백제와 고구려의 유민들이 합세해서 같이 싸웠기에 막을수 있었던거고 신라 혼자서는 막기 어려웠을 군세였다. 고려 초 김부식이 신라계 사람이라 신라쪽에 치우친 역사관념으로 쓰인게 삼국사기이고 역사적인 내용에 문제가 좀 있음, 이후 지역갈등의 소재로 역사를 이용해먹는 경우가 좀 있었고 그런 의미에서 박정희는 경주를 발굴하는데 당시 상당한 비용을 들였음에도 백제지역의 발굴이나 문화재조사는 전무했음 말하는 뽄새를 볼때 넌 지역감정의 내용으로 말하는것 같은데 뭘 ㅈㄹ을 할거면 역사나 알고나 해 아는것도 ㅈ도 없으면서 또또 그놈의 지역감정 열등감이 아니라 너의 두뇌가 열등하다
[@정센]
뭐 어쩌란거여 내가 신라가 강했다고 했음? 이새키들은 양비가 그냥 기본종특이네 저거없으면 말을 할 줄 모르는건가
백제 자체가 한강이북으로 갈만한 수준이 아니어서 한말인데
신라도 쓰레기였다는 소리를 하는 이유가?
그리고 니가 말하는 지역감정은 뜬금없이 신라욕하는 벌레들이 꺼내고 있는게 아닐까? 난 왜 그런걸로 열등감 느끼냐고 말해주고 있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제대로 반박하는게 없네 이 돌대가리는
[@ㅇㅇ]
신라욕이 왜 지역감정인지 이야기부터 해볼래?? 지역감정이야기는 니가 꺼낸거 이야기 하는거고 신라에 대한 이야기는 고등학교 국사시간 대학교 역사 전공 강의시간에도 신라의 통일에 대한 아쉬움을 가지는 사람들이 원래부터 많았음 근데 그걸 지역감정의 프레임으로 바라본게 너가 하는 이야기고 역사에 가정이 없다지만 결과는 있거든? 결과가 말해주는건 신라의 삼국통일이었지만 그 결과로 줄어든 영토를 생각하면 그리고 외세의 힘에 의존해서 같은 민족을 저버린 결과가 후대에 어떤 영향을 남겼는지에 대해서 적은건데 웬 또 양비론 어쩌구래?? 결과가 어떤지 역사가 어떤지에 대해서 무지하길래 설명해줬더니 역시나 알아듣지를 못하는것 같네 ㅋㅋㅋ 내가 돌대가리면 너는 대가리가 있긴하냐?? ㅋㅋㅋㅋㅋ
당시 한반도내 왕조들간 동류의식은 거의 없었고 백제 고구려가 신라를 악랄하게 털어먹은건 생각들 안하심? 주요성 40개 뺏은거는 그냥 죽일려는 의도지ㅋㅋ 고구려는 나당 연합군보다 연개소문 세 아들간 내부 권력투쟁이 진짜 멸망 원인임. 연개소문 장남이 막판에 땅까지 갖다바치면서 당나라한테 항복한거 다들 아시잖어ㅋㅋㅋ 근데 이건 아무도 얘기 안하더라ㅋㅋ 나당연합군은 살기위한 신라의 마지막 발악임. 글고 만주땅 잃은게 안타깝긴 해도 그건 진짜로 지극히 현대한국인의 민족주의적 관점이고 고구려 멸망후 정작 한족들은 만주땅 자체를 가질려는 의지는 약했음. 한족 왕조들한테도 북벌은 온 국력을 쏟아야 할 정도로 리스크도 컸고. 당장 고구려 이후 만주지역에서 발흥한 민족과 국가들 알아보셈 발해 제외하면 다 유목민족들이지. 그 발해조차도 말갈족이 인구의 대부분이었고. 만주땅이 중국 영토에 확실하게 편입된건 청나라때부터인데 청나라가 어느 민족이 세운 나라인지 다들 아시죠? 글고 삼국통일 과정중에서 만주땅을 어느장도 지켜냈다고 칩시다. 그 이후의 역사에서 지금까지 계속 지켜냈을지 어느 과정으로 잃게 될지 어케 장담함?
[@한국사 공부해보니까]
이미 수백년 간 고구려 백제 신라는 서로 동맹을 바꿔가면서 전쟁을 해왔습니다. 악랄하게 털어먹은걸까요? 역사는 기록, 유물, 유적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판단하는 학문이기에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이야기 하기 애매 합니다만, 역사적인 흐름속에서 늘상 일어나던 일들입니다. 다만 그동안 균형이 이루어지던 상황에서 백제와 고구려가 연합하게 된 건 장수왕 대에 고구려가 차지했던 한강유역을 나제동맹을 통해서 신라가 차지하게 됩니다. 그런 상황으로 인해 고구려가 신라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을 것이란 판단이구요, 백제는 나제동맹으로 같이 싸웠으나 마지막 신라 진흥왕의 배신으로 한강유역을 신라가 독차지 하게 되자 당시 백제 성왕이 전투에 나섰다가 관산성에서 전사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이가 안 좋았던 상황이었습니다.
고구려의 내부 권력 투쟁도 전시상황이 아니었다면 자체적으로 내분이 있은 후 끝났겠죠,
발해의 대부분의 민족은 거란족이었구요 주요 지배층이 고구려유민출신들과 말갈족이었다고 하죠, 고구려인들이 당시에 만주지역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과 크게 다를바가 없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고구려의 뿌리 자체는 예맥족에서 나온 민족이고 말갈이나 동호족과 거의 같은 민족이었습니다. 발해에 대해서 다양성의 국가였다고 하는데 애초에 고구려에서부터 그랬을 것이라 판단하고 있고, 고구려와는 상호 의존적인 관계였을 것이라 보고있습니다.(전시에 참전, 생활보장 등) 그랬기에 만주지역을 효과적으로 민족적 동질감을 가진 고구려가 통제가 가능했을 것이라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에 비해 신라는 (고구려의 내분이 있었지만)고구려 멸망의 직접적인 원인이었고, 이후 고구려 지역에 설치된 안동도호부 등의 방해, 신라와의 민족적 동질감도(말갈족, 거란족 등) 없었기에 북방유목민족과 남방농경민족의 관계로 고착화 되었다고 봅니다. 이후 고려 조선으로 이어진 왕조에서도 그렇게 이어졌기에 단절되었고, 고려 후기와 조선 초기 임진왜란 이전까지 유목민족을 공격해 사람숫자를 줄이는 전쟁을 수차례 시행한 바 유목민족과의 관계가 좋을 수가 없었던 것이죠
1. 백제 고구려가 악랄하게 신라를 털어먹었다는건 삼국통일전쟁에 착수하기전 신라 입장에서 그럴 것이라는 뜻이구요. 실제로 삼국이 존속하던 상당기간동안 고구려는 말갈을 동원해서, 백제와 가야는 왜를 동원해서 신라를 공격했었죠. 어쨌든 삼국통일 이전 한반도 세왕조가 '그래도 뿌리가 같은 종족이지'란 동류의식은 거의 가지지 못했던게 확실한거 같고요. 단재 선생께서도 신라의 삼국통일을 외세를 끌어들여서 같은 민족을 쳤다고 평가했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근현대의 민족주의적 관점입니다. 신라의 통일이후 세국가의 백성들이 같은 국가를 가진 민족의 통합을 경험한건 결국 신라가 최초죠. 하지만 지나치게 경직된 신분제로 인해 끝내 진정한 한민족이란 정체성을 형성하지 못한게 신라의 통일이 가진 진정한 한계라는게 최근 학계의 의견인거 같습니다.
2. 발해 인구의 주류는 말갈족이 맞습니다. 아마 혼동하신듯 합니다. 말갈도 일파가 많은데 그중에서도 흑수말갈이 발해건국의 주요세력이었죠. 하지만 결국 발해의 주요 지도층은 왕실인 대씨와 고구려계 귀족이었습니다. 이러한 고위층의 인구구성 역시 고구려계와 말갈계의 진정한 통합으로 이루어지지 못했죠. 말갈은 숙신으로 불리다가 여진으로 이어진 종족인데 현대 한국인의 조상인 예맥족 및 한족과는 엄연히 그 뿌리가 다른 민족일겁니다. 물론 고구려는 그들을 말갈계 고구려인으로 여겼죠. 해외 학계에서는 발해의 시조인 대조영을 고구려인과 혈통이 섞인 말갈계 고구려인으로 보고 있다고 하네요. 하지만 고구려내 말갈인들이 고구려라는 국적을 가지고 있었어도 말갈어와 말갈문화를 가진 말갈인이라는 정체성역시 확고했을겁니다. 그리고 고구려에 귀속되지않은 다른 말갈 일파도 있었고요. 그러니 결국 여진족으로 이어져 금나라를 세웠겠지요.
3. 고구려는 무려 3차례나 당나라와 큰 전쟁을 치렀습니다.(고당 전쟁) 3번째 전쟁에서는 기록상 당은 50만이나 되는 대군을 동원했다는군요. 결국 고구려의 주적은 신라보다는 당이었습니다. 고구려는 중원을 통일한 당조차도 온 국력을 쏟아부어야하는 동아시아의 주요 강국인데 신라는 절대 고구려의 직접적인 멸망원인이 될 만큼의 국력이 아니었죠. 대신 고구려가 당과 싸울동안 한반도내 고구려 국경지역을 빼았기는 했었죠. 고구려말기 연남생 삼형제의 내분을 당과 신라가 아니었다면 알아서 정리될거라고 하셨는데 절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애시당초 형제간 내전에서 패배한 연남생이 아예 국토까지 갖다 바치면서 당에 항복했습니다. 그것도 고구려를 공격해달라고까지 하면서요. 마침 고구려를 벼르던 당은 이때다싶어 이세적에게 고구려 침공을 맡겼죠.
4. 만주에는 고구려와 말갈(후에 여진)만 있던게 아니었습니다. 고구려 멸망 후 돌궐계 민족들 몽골계 민족들 흉노의 후예들 선비족 등등 많은 유목국가들이 치열하게 각축전을 벌이던 곳이고 중국의 한족들도 '수, 당, 송, 명'이라는 대제국을 이뤘어도 끝내 만리장성을 넘지 못할 정도였을 뿐더러 결국 화북을 점령할 정도로 강성한 거란의 요나라와 여진의 금나라가 차례로 차지한 땅입니다. 애초에 한국인만 만주벌판 누비던 때가 있는게 아니에요. 그리고 고구려이후 세워진 한반도 왕조가 만주를 어느정도 수복한들 그 이후에 어떤 과정을 통해서 잃었을지 어떻게 장담합니까. 저도 고등학교때 민족주의적이고 고구려중심의 사관을 가진 선생님들의 수업을 들은적이 있습니다만 그 어린 나이에도 상식적으로 수긍하기 힘들었어요. 아직도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일반 대중의 역사인식을 역사학계도 우려하고 있는 듯 합니다.
최소한 지금만큼의 땅덩어리는 아니었겠지..?
우리 한글도 없었을거고..?
아무리 승자의 편에서 역사가 적혀진다지만 신라 그지 깽깽이들 진짜...
시키는 대로 전부 다하는 아프리카TV 성인버전이라고 보면 됨
소라넷 애들도 방송 중
http://coi.kr/uct
얘네는 천년전 역사로 열등감을 느끼네 ㅋㅋ여러가지로 대단함
백제 자체가 한강이북으로 갈만한 수준이 아니어서 한말인데
신라도 쓰레기였다는 소리를 하는 이유가?
그리고 니가 말하는 지역감정은 뜬금없이 신라욕하는 벌레들이 꺼내고 있는게 아닐까? 난 왜 그런걸로 열등감 느끼냐고 말해주고 있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제대로 반박하는게 없네 이 돌대가리는
내가 한적이 없는 말도 니 뇌내망상으로 싸질러대는거보니
정신병있는거같은데 정신차려
우쭈쭈 ㅋㅋㅋㅋㅋㅋㅋㅋ
코로나 땜에 밖도 위험하구
방구석에서 넘 많이 치면 집중력 저하된대
너가 성왕따라 가버리면 안대자너 ㅜㅜ
고구려의 내부 권력 투쟁도 전시상황이 아니었다면 자체적으로 내분이 있은 후 끝났겠죠,
발해의 대부분의 민족은 거란족이었구요 주요 지배층이 고구려유민출신들과 말갈족이었다고 하죠, 고구려인들이 당시에 만주지역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과 크게 다를바가 없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고구려의 뿌리 자체는 예맥족에서 나온 민족이고 말갈이나 동호족과 거의 같은 민족이었습니다. 발해에 대해서 다양성의 국가였다고 하는데 애초에 고구려에서부터 그랬을 것이라 판단하고 있고, 고구려와는 상호 의존적인 관계였을 것이라 보고있습니다.(전시에 참전, 생활보장 등) 그랬기에 만주지역을 효과적으로 민족적 동질감을 가진 고구려가 통제가 가능했을 것이라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에 비해 신라는 (고구려의 내분이 있었지만)고구려 멸망의 직접적인 원인이었고, 이후 고구려 지역에 설치된 안동도호부 등의 방해, 신라와의 민족적 동질감도(말갈족, 거란족 등) 없었기에 북방유목민족과 남방농경민족의 관계로 고착화 되었다고 봅니다. 이후 고려 조선으로 이어진 왕조에서도 그렇게 이어졌기에 단절되었고, 고려 후기와 조선 초기 임진왜란 이전까지 유목민족을 공격해 사람숫자를 줄이는 전쟁을 수차례 시행한 바 유목민족과의 관계가 좋을 수가 없었던 것이죠
2. 발해 인구의 주류는 말갈족이 맞습니다. 아마 혼동하신듯 합니다. 말갈도 일파가 많은데 그중에서도 흑수말갈이 발해건국의 주요세력이었죠. 하지만 결국 발해의 주요 지도층은 왕실인 대씨와 고구려계 귀족이었습니다. 이러한 고위층의 인구구성 역시 고구려계와 말갈계의 진정한 통합으로 이루어지지 못했죠. 말갈은 숙신으로 불리다가 여진으로 이어진 종족인데 현대 한국인의 조상인 예맥족 및 한족과는 엄연히 그 뿌리가 다른 민족일겁니다. 물론 고구려는 그들을 말갈계 고구려인으로 여겼죠. 해외 학계에서는 발해의 시조인 대조영을 고구려인과 혈통이 섞인 말갈계 고구려인으로 보고 있다고 하네요. 하지만 고구려내 말갈인들이 고구려라는 국적을 가지고 있었어도 말갈어와 말갈문화를 가진 말갈인이라는 정체성역시 확고했을겁니다. 그리고 고구려에 귀속되지않은 다른 말갈 일파도 있었고요. 그러니 결국 여진족으로 이어져 금나라를 세웠겠지요.
3. 고구려는 무려 3차례나 당나라와 큰 전쟁을 치렀습니다.(고당 전쟁) 3번째 전쟁에서는 기록상 당은 50만이나 되는 대군을 동원했다는군요. 결국 고구려의 주적은 신라보다는 당이었습니다. 고구려는 중원을 통일한 당조차도 온 국력을 쏟아부어야하는 동아시아의 주요 강국인데 신라는 절대 고구려의 직접적인 멸망원인이 될 만큼의 국력이 아니었죠. 대신 고구려가 당과 싸울동안 한반도내 고구려 국경지역을 빼았기는 했었죠. 고구려말기 연남생 삼형제의 내분을 당과 신라가 아니었다면 알아서 정리될거라고 하셨는데 절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애시당초 형제간 내전에서 패배한 연남생이 아예 국토까지 갖다 바치면서 당에 항복했습니다. 그것도 고구려를 공격해달라고까지 하면서요. 마침 고구려를 벼르던 당은 이때다싶어 이세적에게 고구려 침공을 맡겼죠.
4. 만주에는 고구려와 말갈(후에 여진)만 있던게 아니었습니다. 고구려 멸망 후 돌궐계 민족들 몽골계 민족들 흉노의 후예들 선비족 등등 많은 유목국가들이 치열하게 각축전을 벌이던 곳이고 중국의 한족들도 '수, 당, 송, 명'이라는 대제국을 이뤘어도 끝내 만리장성을 넘지 못할 정도였을 뿐더러 결국 화북을 점령할 정도로 강성한 거란의 요나라와 여진의 금나라가 차례로 차지한 땅입니다. 애초에 한국인만 만주벌판 누비던 때가 있는게 아니에요. 그리고 고구려이후 세워진 한반도 왕조가 만주를 어느정도 수복한들 그 이후에 어떤 과정을 통해서 잃었을지 어떻게 장담합니까. 저도 고등학교때 민족주의적이고 고구려중심의 사관을 가진 선생님들의 수업을 들은적이 있습니다만 그 어린 나이에도 상식적으로 수긍하기 힘들었어요. 아직도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일반 대중의 역사인식을 역사학계도 우려하고 있는 듯 합니다.
꺼져 비융신들아
신집 현존 안한게 ㄹㅇ 까비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