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르트는 유태계 독일인 상인이었다.
그는 홍콩에서 사업을 하다가 파산 위기에 처한다.
눈깔이 돌아간 그는 곧 기상천외한 짓을 벌이게 되는데..
조선을 타겟으로 잡은 오페르트는 1866년, 영국군을 사칭하며 조선에 2번의 통상 요구를 한다.
당연히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1867년 파산한 그는 사람을 모으기 시작한다.
독일인 상인, 프랑스인 선교사, 미국인 물주, 천주교도 조선인 안내자, 유럽, 말레이시아 선원, 중국인, 필리핀 일꾼 등으로 구성된 사실상 다국적 해적 같은 오페르트 일당 100여 명이 구만포에 상륙한다.
그들은 러시아 군대를 사칭하며 무기를 가지고 관청으로 들이닥쳤고, 농민들의 농사 기구도 다 압수했다.
그리고는 밤이 되자,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고 한다.
남연군의 시신을 이용해서 조선과 딜을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묘 석회벽의 두께는 1m나 되었고, 도굴을 하지 못하고 튄다.
군관 100여 명이 출동했으나, 오페르트 일당을 찾지 못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포기할 오페르트가 아니었다.
그는 이번엔 독일 수군제독을 사칭하며 흥선대원군에게 "도굴을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것, 나라 안위를 생각해서 처신 잘하라"는 내용의 추한 협박 편지를 보낸다.
다시 인천 영종도에 상륙한 오페르트 일당은 칼과 총을 들고 성문을 두드리면서 무력시위를 했는데, 조선군의 반격으로 2명이 죽고 도망간다.
그 2명의 시신은 효수당해 조선 팔도에 돌려졌고 사건에 가담한 천주교인들은 3년 후 능지형으로 처형당한다.
오페르트는 본국에 돌아와서 결국 재판에 회부되었고, 수군제독 사칭죄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는 모국인 프로이센으로부터 나라 망신이라고 비난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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