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원균은 진짜...얼마나 폐급이었던 걸까
조선을 발닦개로도 안 볼 정도로 오만하기 짝이 없는 명나라 장수 진린도
구워삼아서 자신을 존경하게 만들 정도의 인품을 가진 공정과 엄격의 화신인 이순신 장군이
난중일기에서 원균이란 인간에 대해 감정을 드러내며 이 인간은 그냥 답이 없다고 몇번이나 비슷한 기록을 남기고
실록과 당대의 인물들이 남긴 기록들을 봐도 무지성 원균 쉴더인 선조 빼곤 제발 원균 좀 치우라고 다 깐 걸 보면
보통 무능한 수준이 아닌데다 인성도 보통 노답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정센]
거점 방어를 위해 주변 지역의 병사를 모두 모아 버티는 동안 중앙에서 지휘할 장수가 내려와 맞선다는 제승방략은 이론적으로 잘 진행되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애초에 조선의 현실을 감안하지 못했기에 뇌피셜 방구석 이론에 가까움. 하다못해 현재 한국 예비군, 민방위도 평소에 필요한 편제인원부터 시작해서 장비들이 디테일하게 매년 계획이 세워져서 유지되는데 당시 조선은 자신들이 이론적으로 세워놨던 제승방략을 유지 운용하고 준비할 수 있는 행정력이 없었음.
뿐만 아니라 원래는 진관체제였던 조선의 군사전략이 제승방략으로 바뀐 것도 조선이 주먹구구식으로 군사를 운용했다는 증거에 가까움. 임진왜란으로 드러난 조선의 근본적인 문제는 안 그래도 조세비율이 낮아 국가의 예산이 넉넉하지 않은 가운데 세조의 반정 이후로 급격히 늘어난 공신들로 인해 박살난 조선의 조세수입 체계에 있음.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세조는 자신의 친위세력을 만들기 위해 공신을 남발했는데 공신들이 늘어난만큼 세금을 거둬들이지 못하는 면세지가 늘어나면서 조세수입에 크게 구멍이 생겨났고, 여기에 더해 외국의 본격적인 침략이 장기간 없다 보니 평화가 길어지면서 안일한 분위기가 팽배해진 가운데 기본적으로 유지되어야 했던 상비군에 대한 인적, 자본 투입을 감축함으로서 세조 이후 부족해진 조세수입을 메꿨음. 간단하게 임진왜란 전 조선의 상황은 나라를 운영할 예산이 부족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유지해야 하는 최소한의 군사도, 무기도 포기하고선 일이 터지면 "에라 누가 어떻게든 해주지 않을까?" 하던 대가리 꽃밭 상황이었음.
그러다 보니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의 군대가 부정부패한 것처럼 원래대로면 장부 상에 분명히 존재하는 군사들이 실제론 없고, 장부 상에 존재하는 무기들도 오랫동안 관리가 되어 있지 않아 녹슬었거나 망가져 있는 식으로 노후화됨. 이런 실정이 지속되다 조선에서 덮어놓고 외면했던 조선의 문제들이 임진왜란을 계기로 드러난 것.
근데 원균은 진짜...얼마나 폐급이었던 걸까
조선을 발닦개로도 안 볼 정도로 오만하기 짝이 없는 명나라 장수 진린도
구워삼아서 자신을 존경하게 만들 정도의 인품을 가진 공정과 엄격의 화신인 이순신 장군이
난중일기에서 원균이란 인간에 대해 감정을 드러내며 이 인간은 그냥 답이 없다고 몇번이나 비슷한 기록을 남기고
실록과 당대의 인물들이 남긴 기록들을 봐도 무지성 원균 쉴더인 선조 빼곤 제발 원균 좀 치우라고 다 깐 걸 보면
보통 무능한 수준이 아닌데다 인성도 보통 노답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문제는 20만 단위로 각잡고 편제짜서 쳐들어올 거라고 상상도 못한 거지. 이럴 줄 알았으면 있는 거 없는 거 싹 끌어다 부산에 박았지.
어쩔 수 없는 게 그때까지 남쪽에서 국가 전략적으로 쳐들어온 역사가 없었음. 북방이야 역사적으로 대륙 국가의 침공이 많았지만 남쪽은 싸움은 잘해도 기본적으로 털어먹고 튀자는 왜구 마인드였고 고려말 대규모 왜구 침공 때도 상태 안좋은 고려가 몰아내는데 성공함.
임란 기준 몇십년 전인 삼포왜란 때도 심각하긴 해도 해안가 노략질 정도였고 이것도 대윤소윤문정왕후 그 맛탱이간 상태에서도 조선이 각잡고 반격하니 퇴치에 성공함. 결국 조선 입장에선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선이 거기까지였음. 지금처럼 첩보망이 정밀한 것도 아니고.
쉽게 말해 북한놈들 쳐들어올 거 대비해 기갑부대 포병 준비했는데 스텔스 폭격기로 서울 폭격 당한 꼴이랄까
뿐만 아니라 원래는 진관체제였던 조선의 군사전략이 제승방략으로 바뀐 것도 조선이 주먹구구식으로 군사를 운용했다는 증거에 가까움. 임진왜란으로 드러난 조선의 근본적인 문제는 안 그래도 조세비율이 낮아 국가의 예산이 넉넉하지 않은 가운데 세조의 반정 이후로 급격히 늘어난 공신들로 인해 박살난 조선의 조세수입 체계에 있음.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세조는 자신의 친위세력을 만들기 위해 공신을 남발했는데 공신들이 늘어난만큼 세금을 거둬들이지 못하는 면세지가 늘어나면서 조세수입에 크게 구멍이 생겨났고, 여기에 더해 외국의 본격적인 침략이 장기간 없다 보니 평화가 길어지면서 안일한 분위기가 팽배해진 가운데 기본적으로 유지되어야 했던 상비군에 대한 인적, 자본 투입을 감축함으로서 세조 이후 부족해진 조세수입을 메꿨음. 간단하게 임진왜란 전 조선의 상황은 나라를 운영할 예산이 부족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유지해야 하는 최소한의 군사도, 무기도 포기하고선 일이 터지면 "에라 누가 어떻게든 해주지 않을까?" 하던 대가리 꽃밭 상황이었음.
그러다 보니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의 군대가 부정부패한 것처럼 원래대로면 장부 상에 분명히 존재하는 군사들이 실제론 없고, 장부 상에 존재하는 무기들도 오랫동안 관리가 되어 있지 않아 녹슬었거나 망가져 있는 식으로 노후화됨. 이런 실정이 지속되다 조선에서 덮어놓고 외면했던 조선의 문제들이 임진왜란을 계기로 드러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