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이 공부를 진짜 많이해본 사람은 잘 알고 있음. 공부는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하는 것이고, 그렇게 했을 때 가장 효율이 높다는 걸.
어린 아이의 부모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교육법은 공부가 지겨운 것이 아니라 즐거운 것이라는 인식을 형성시켜주는 것임. 조급함을 버리고 배운다는 행위가 사람이 성장하고 행복해지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걸 익힐 수 있도록 도우면 아이는 설령 명문대나 의대는 못 가도, 공부라는 수단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행복하게 가꿔나갈 것임.
이게 가능하기 위해 명심해야할 가장 첫번째 전제 조건은 "내 아이는 내 아바타가 아니라 나에게서 비롯되긴 했지만 나와는 다른 독립적인 인격체이다."라는 것.
아이를 내 아바타라고 착각하는 순간부터 부모에겐 아이를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하고 싶은 욕망이 피어오르는데, 그때부터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들을 자식으로 대리해서 이루려는 집착이 생겨남.
하지만 본인도 스스로 해내지 못한 걸 나와는 다른 자아를 가진 존재로 실현하는 것이 쉬운 일이겠음? 아이의 두뇌는 부모의 두뇌에서 유전된 것으로 돌연변이가 아닌 이상, 하드웨어에서 큰 차이가 없음. 따라서 내가 실현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히 내 자식을 통해 구현하는 게 어려울 수밖에 없음. 그러니 내가 하지 못한 걸 자식을 통해 대리구현해보겠다는 헛된 욕망은 본인과 아이를 위해 일찌감치 버리는 게 좋음.
본인들이 공부를 많이 안해 본 부모님들의 전형이 애를 막 기계 굴리듯이 굴리면 서울대 가고 의대 가고 뭐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들 하시는데 기계도 너무 과하게 운용하면 망가지듯이 사람도 망가진다는 걸 잘 깨닫지 못함. 그런데 기계는 고장나면 바로 고장 신호가 뜨거나 이상반응이 눈에 띄게 발생해서 어느 정도까지는 고장난 부분을 확인하고 부품을 교체하면 다시 복구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사람의 정신은 그게 안됨.
정신적으로 어딘가에서 문제가 발생해도 그 결과가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설령 문제가 발생한 부분을 뒤늦게 알고 치료를 시작해도 완치가 어렵고 그 상태로 평생을 감. 자식의 미래를 위한다는 말로 어린 나이부터 아이에게 과도한 학습을 시키는 건 일종의 정신적 장애를 형성해주는 것과 마찬가지임. 그러다 그게 매우 심각한 경우에는...학업에 대한 과도한 스트레스로 10대에 세상과 이별하는 거고.
물론 기계마다 달라서 어떤 기계는 똑같은 상황에서 굴려도 고장이 나지 않는 것처럼 아이들 중에서 소수지만 부모가 굴리는대로 타고난 정신적 내구도(?)가 좋아서 잘 버티거나 타고난 재능이 좋고, 대치동식 교육 스타일과 잘 맞는 괜찮은 경우가 있는데 이런 소수의 성공사례가 하나의 신화가 됨. 이 소수의 사례를 바탕으로 대치동맘이니 하는 식으로 어렸을 때부터 아이를 관리하고 공부하는 기계로 만드는 부모의 중요성을 믿게 되는 것 같음.
그러나 대부분 어릴 적부터 과도하게 공부를 시킨 아이들은 10대에 공부에 질려버리는 경우로 이어짐. 이 케이스에 속한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쉽게 공부에 흥미를 갖기 어려워짐. 공부는 그저 억지로 어쩔 수 없이 지겹게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깊게 박힌 상태라서 공부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어있고,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스트레스가 발생하니 공부하기 위해 책상에 앉기까지 심리적으로 높은 장벽이 세워짐. 책상에 앉는 것 자체를 회피하고 싶어함. 당연히 그런 부담 없이 자연스럽고 평범하게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시작하는 아이들과 비교했을 때 학습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이 생긴 아이들은 학습성과도 매우 낮거나 효율이 떨어짐.
어린 아이의 부모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교육법은 공부가 지겨운 것이 아니라 즐거운 것이라는 인식을 형성시켜주는 것임. 조급함을 버리고 배운다는 행위가 사람이 성장하고 행복해지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걸 익힐 수 있도록 도우면 아이는 설령 명문대나 의대는 못 가도, 공부라는 수단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행복하게 가꿔나갈 것임.
이게 가능하기 위해 명심해야할 가장 첫번째 전제 조건은 "내 아이는 내 아바타가 아니라 나에게서 비롯되긴 했지만 나와는 다른 독립적인 인격체이다."라는 것.
아이를 내 아바타라고 착각하는 순간부터 부모에겐 아이를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하고 싶은 욕망이 피어오르는데, 그때부터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들을 자식으로 대리해서 이루려는 집착이 생겨남.
하지만 본인도 스스로 해내지 못한 걸 나와는 다른 자아를 가진 존재로 실현하는 것이 쉬운 일이겠음? 아이의 두뇌는 부모의 두뇌에서 유전된 것으로 돌연변이가 아닌 이상, 하드웨어에서 큰 차이가 없음. 따라서 내가 실현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히 내 자식을 통해 구현하는 게 어려울 수밖에 없음. 그러니 내가 하지 못한 걸 자식을 통해 대리구현해보겠다는 헛된 욕망은 본인과 아이를 위해 일찌감치 버리는 게 좋음.
정신적으로 어딘가에서 문제가 발생해도 그 결과가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설령 문제가 발생한 부분을 뒤늦게 알고 치료를 시작해도 완치가 어렵고 그 상태로 평생을 감. 자식의 미래를 위한다는 말로 어린 나이부터 아이에게 과도한 학습을 시키는 건 일종의 정신적 장애를 형성해주는 것과 마찬가지임. 그러다 그게 매우 심각한 경우에는...학업에 대한 과도한 스트레스로 10대에 세상과 이별하는 거고.
물론 기계마다 달라서 어떤 기계는 똑같은 상황에서 굴려도 고장이 나지 않는 것처럼 아이들 중에서 소수지만 부모가 굴리는대로 타고난 정신적 내구도(?)가 좋아서 잘 버티거나 타고난 재능이 좋고, 대치동식 교육 스타일과 잘 맞는 괜찮은 경우가 있는데 이런 소수의 성공사례가 하나의 신화가 됨. 이 소수의 사례를 바탕으로 대치동맘이니 하는 식으로 어렸을 때부터 아이를 관리하고 공부하는 기계로 만드는 부모의 중요성을 믿게 되는 것 같음.
그러나 대부분 어릴 적부터 과도하게 공부를 시킨 아이들은 10대에 공부에 질려버리는 경우로 이어짐. 이 케이스에 속한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쉽게 공부에 흥미를 갖기 어려워짐. 공부는 그저 억지로 어쩔 수 없이 지겹게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깊게 박힌 상태라서 공부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어있고,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스트레스가 발생하니 공부하기 위해 책상에 앉기까지 심리적으로 높은 장벽이 세워짐. 책상에 앉는 것 자체를 회피하고 싶어함. 당연히 그런 부담 없이 자연스럽고 평범하게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시작하는 아이들과 비교했을 때 학습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이 생긴 아이들은 학습성과도 매우 낮거나 효율이 떨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