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레알 마드리드의 유럽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TV 중계를 본 적이 있어요.
마냥 입이 벌어지더군요.
같은 축구선수가 봐도 예술이라고 느낄 만큼 단단한 조직력과 개인기의 절묘한 조화는 거의 환상적인 수준이었어요.
[달려라! 천방지축] 박지성의 네덜란드 일기 8 中
이 사장은 흥분을 억누르는 듯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지성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다! 맨유에서 오란다.
조건도 좋아. 알렉스 퍼거슨 감독을 직접 만나 이야기하고 오는 길인데 벌써 너에대해 훤히 알더라."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니!
퍼거슨 감독에게 21번을 달겠다고 요청했다. 마침 21번이 비어 있었다.
퍼거슨 감독은 왜 그렇게 뒤쪽 번호를 달려고 하느냐며 13번을 권했다.
13번은 중학교 시절 경기도 내 4개 대회에서 우승하며 득점상을 받았을 때의 등번호였다.
그러고 보니 등번호 13번도 나와 인연이 깊은 셈이었다. 나는 흔쾌히 퍼거슨 감독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우리가 오웬을 영입했다면, 그것은 옵션이 될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박지성을 원했다.
영국기자 : 유니폼 팔려고 데려온건 아닌지
박지성은 2~3년 내로 맨유맨이 될것이다. 그를 믿기에 데리고 왔고 또 그만큼의 활약을 할 수 있는 선수이다.
- 퍼거슨 감독이 처음 만나 뭐라고 했나.
'웰컴'이라고 했다. 인상이 좋아보였다. 편하게 생각하고 만났다.
무섭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잘 모르겠다. 내가 못하면 화내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웃음)
내가 보기에는 영어를 상당히 능숙하게 구사하는 반니스텔루이마저
퍼거슨 감독의 독특한 스코틀랜드 억양에는 두 손 다 든 모양이었다.
"ji, 걱정 마. 나도 알아듣기 힘들 때가 많으니까.
영국 북부 지방 사람들과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사람들은 제각기 독특한 억양을 가지고 있어서
런던 사람들조차 잘 알아듣지 못한대."
반니스텔루이와 대화를 나눈 후로 퍼거슨 감독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받았던 스트레스는 상당부분 사라졌다.
스트레스가 없어지니까 요즘은 오히려 이해가 더 잘되는 것도 같다.
아직도 퍼거슨 감독이 "다 알아들었어?" 라고 물으면 "네, 물론이죠." 하고 거짓말도 가끔 하지만.
정신없이 시즌 첫 경기를 마치고 버스에 오르자 감독은 내게
"웰컴 투 프리미어리그." 라고 말해주었습니다.
프리미어리그 데뷔전이 나름 성공적으로 치렀다는 감독의 칭찬처럼 들려 기분이 좋았습니다.
"박지성이 리버풀전에서 1분 뛴 것을 두고 한국에서 말이 많다네."
"도대체 이해를 못하겠네. 나는 지성이가 우리 팀에 있어서 매우 기쁜데 말이야.
한 경기 정도 제대로 못 뛴 것 가지고 그렇게 표현하다니,
영국이나 한국이나 매스컴은 다 비슷한 모양이군."
나는 이 소식을 영국에 같이 머물던 김정일 매니저를 통해 전해 들었다.
매니저 앞에서는 어색하게 미소 짓고 말았지만 돌아서서는 소리라도 한바탕 지르고 싶을 만큼 기뻤다.
첫 골이지? 나도 정말 기쁘다. 이제 골 자주 넣어라.
어떤 한 선수가 9개월이나 부상에 빠져있게 되면
대부분 다시 적응해 나갈 수 있을까 걱정하게 되지만
지성이는 걱정 없어, 그는 단연코 엄청나.
2007년 12월, 잉글랜드 북부 선더랜드에 위치한 라이트 스타디움.
무릎 수술을 받고 재활하던 내가 이곳에서 270일만에 다시 필드로 돌아왔습니다.
퍼거슨 감독이 몸을 풀라고 지시할 때무터 가슴이 쿵쾅거렸습니다.
감독은 내 귀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왼쪽에서 시작해라. 행운을 빈다."
그토록 기대했던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출전이었는데,
퍼거슨 감독은 결승전 아침식사 후 나를 따로 불러 내가 경기에 빠진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쓰라린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또다시 변화해야 했습니다. 지금까지의 나를 버려야 했습니다.
모스크바에서 양보만으로는 최고의 무대에 초청받을 수 없다는걸 절감했습니다.
큰 경기에서도 잘해낼 것이라는 믿음을 주기 위해서는 더 강렬한 욕심을 품어야 했습니다.
더 큰 자신감으로 무장하자고 다짐하며 나 자신과 두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다치지 말자. 그리고 반드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다시 도전해보자."
회상에 잠긴 듯 잠시 머뭇거린 퍼거슨 감독은 2009/2010 시즌 AC밀란과의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안드레아 피를로를 꽁꽁 묶으며 '피를로 지우개'라는 별명을 얻었던 박지성을 말했다.
"박지성은 피를로에게 공을 찰 기회를 주지 않았다.
피를로의 경기당 평균 패스는 75회다. 박지성이 막아서자 피를로는 25회 밖에 패스를 하지 못했다.
박지성의 능력은 맨유에게 대단한 결과를 가져왔다. 현대 유럽 축구의 표본이다."
첼시는 미드필드가 두터운 팀이다. 그들을 제압하려면 영리하게 대처해야한다.
그것이 바로 내가 박지성을 내보낸 이유다.
헌신적이며 훌륭한 축구 선수다. 경기장 위에서 지능이 좋다.
그것이 내가 그를 존중하고 기용하는 이유다.
그는 결코 우리에게 패배를 안겨주지 않는다.
박지성은 프로페셔널의 전형이자 기량이 뛰어난 축구 선수다. 그리고 정말 멋진 남자다.
박지성 같은 선수와 함께 경기를 한다는 것은 모든 감독의 꿈이다.
실력과 성품을 보았을 때 박지성이 그의 조국, 한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박지성은 축구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선수다.
세계 최고의 선수중 하나, 문제는 그가 모른다.
지성이에게.
나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대한 네 충성심에 감사하고 새로운 구단에서의 행운을 빌어주며,
널 보내야 했던 이유를 설명하는 편지를 일찌감치 네게 보내지 못했던 걸 부디 용서해라.
네가 원했고, 필요했던 출전 수를 제공하지 못했던 게 안타깝다.
내가 널 무시하는 것처럼 느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전혀 사실이 아니야.
프로 정신, 충성심 그리고 결단력 같은 면에서 너만큼 신뢰를 할 수 있었던 선수는 없었단다.
난 네 무릎 수술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너의 건강한 모습을 항상 유지하고 싶었다.
물론 이런 말도 네게는 부당했을 테고, 아마 그 결정이 달갑지 않았을 게다.
특히 내 손자는 가장 좋아했던 선수인 널 다른 팀으로 보낸 이후로 아직도 나에게 말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아직도 마음에 걸리고 있지만, 너를 보낸 결정이 얼마나 어려웠던 건지 네가 이해해주길 바란다.
유나이티드 소속이던 시절 네 돋보이는 능력을 신뢰했고 내 코치진(staff) 모두도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 넌 내가 보유한 선수들 중 가장 충성심있고 정직한 선수 중 하나였고,
우리 팀에 너처럼 예의가 바른 선수가 있어 자랑스러웠다.
의심의 여지없이 넌 축구계의 환상적인 대표 인사이며,
영어에 그렇게 빨리 적응하며 안착하는 걸 보면, 네 결의력과 열정이 축구뿐 아니라 삶 자체에 있기 때문이었다.
구단의 모든 이들을 대표해 새로운 구단에서의 성공을 빈다.
지성아. 난 언제까지나 너를 내 선수 중 하나로 여길 것이고, 언제고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날 찾아와라.
마지막으로 너와 네 가족이 언제나 행복하고 행운이 깃들길 바란다.
- 박지성이 맨유에서 마지막으로 아쉬운 점을 언급한 것이 있다면?
에브라는 감독과 통화를 자주 하는데, 본인은 거의 안했다고 했다.
7년 동안 그런 부분을 하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고 했다.
3~4경기 동안 나서지 못했을 때 퍼거슨 감독을 찾아간 것이 유일하게 개인적으로 찾아간 것이다.
퍼거슨 감독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최고에게는 최고만의 경험과 노하우, 끊임없는 연구와 카리스마가 있습니다.
맨유 감독에 막 부임했을 때,
그는 뒤처진 맨유의 축구를 바꾸기 위해 유럽 각국 리그의 장점을 배우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고 합니다.
자신이 쌓아온 우승 타이틀에 갇혀 있기보다는 더 나은 걸 찾기 위해 버릴 줄 아는 힘이야말로
맨유에서 25년간 전설을 쓸 수 있는 비결이 아닐까 합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난 지도자의 덕목은 갖추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만일 지도자가 된다면 히딩크와 퍼거슨처럼 최고의 감독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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