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sx]
조선이 명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한건 누구도 부인하지못하는 사실이죠. 하지만 식민지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봅니다.
그리고 이 게시글은 조선 이전의 삼국시대 남북국시대 고려시대를 다 중국의 역사라고 주장하며 세계에 사기를 치는 동북공정에 대한 게시물인데 조선이 사실상 식민지였다고 본다는 코멘트는 의도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의도가 잘못 해석되어 이상한 의미로도 해석이 진행될 수 도 있으니 수정.보완하시는게 어떨까요?
[@ddsx]
잘못 알고 있는 정보 수정:
조선 초기엔 그랬으나 이후에 명나라 황제가 인정을 해야 왕으로써 인정을 한다기보단
지금으로 치면 UN가입과 유사한 형태였음.
UN에서 가입신청 넣고 승인 내려주는 것을 UN에 대한 식민지 청원이라고 함?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공물 보내면 명나라는 그에 몇배는 되는 보답을 내리는 형태의 '공무역'이었음.
태종 때는 무슨 꺼리만 있다 싶으면 공물을 보내버리니까
명나라: 조선은 그만 보내셈. 명 황실 재산 거덜나겠음.
태종:ㄴㄴ 더 보낼 거임. 님네 황제 생일이랑 님 황제 엄마 생일이랑 아무튼 꺼리만 있어 봐. 닥치고 보낼 거임
명나라:ㄴㄴ 조선은 공물 올 수 있는 횟수 정할 거니까 그 이상 보내면 안 받을 거임.
되도록이면 보내지 마셈. 님들 성의 너무 부담스러움
이라고 기록되어 있음
지금의 대한민국이 미국의 식민지가 아니듯
조선의 명나라에 대한 사대라는 것은 강대국을 이용하여 이득을 챙기기 위한
실리에 기반한 외교라고 보는 게 객관적인 시각일 거.
[@ddsx]
보릿고개가 생긴 이유는 농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기보다
당신의 기술력으로는 지금처럼 저수지를 많이 건설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인 것이 기술적인 이유고
조선 사람들이 먹어대는 먹성이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먹는 것이 실제적인 이유라고 봐야 됨.
선교사들이 본 조선사람 먹성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다식에 대해서는 대신과 평민의 구별이 없다. 조선 사람들은 많이 먹는 것이 곧 명예로운 것으로 여기며, 식사의 질 보다는 양을 중시한다. 조선 사람들은 식사를 하면서 수다를 떠는 법이 없다. 노동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식사량은 1리터의 쌀밥으로, 이는 아주 큰 사발을 꽉 채운다. 각자가 한 사발씩을 다 먹어치워도 충분하지 않으며, 계속 먹을 준비가 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2~3인분 이상을 쉽게 먹어치운다. 우리 신자들 중의 한 사람은 나이가 30세에서 45세 가량 되는데, 그는 어떤 내기에서 7인분까지 먹었다. 이것은 그가 마신 막걸리 사발의 수는 계산하지 않은 것이다. 64세에서 65세가 된 어느 노인은 식욕이 없다 하면서도 다섯 사발을 비웠다. 조선 사람들은 열 사발을 감당하는 자를 장사라고 부른다.
소를 잡을 일이 있어 쇠고기가 마음껏 제공되면 아무도 고기로 꽉찬 접시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과일을 대접할 경우, 예를 들어 큰 복숭아를 내놓을 때에 가장 절제하는 사람도 10개 정도는 먹으며, 종종 30개, 40개, 50개까지 먹는 사람도 있다. 참외를 먹을 경우 보통 10개 정도 먹지만 때때로 20개나 30개를 먹어치우기도 한다.
조선의 어머니들은, 아이의 배를 손으로 두들겨 보면서 뱃속이 가득해지는 최후까지 밥을 채워 넣는다. 때때로 숟가락 자루로 아이의 배를 두드려 보다가 속이 꽉 찼을 때에 비로소 밥 먹이는 것을 중단한다. 누군가를 잘 대접해야 할 때는 닭 1마리를 통째로 내놓는다. 아무도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말할 필요도 없이 각자는 그것을 다 먹어치운다.[14] 쇠고기나 개고기도 큼직하게 썰어서 양껏 내놓는다. 그래야만 사람들은 고기를 먹었다고 여긴다. 특히 곱창과 생선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요리이다. 하지만 조선인들이 이를 식탁에 올리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보자마자 먹어치운다. 왜냐하면 조선인들은 자제할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조선인들의 집에는 비축식량이 없으며, 손에 넣는 즉시 먹어치운다. 물론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찬장이나 식량 창고가 없으므로 음식을 보관할 수 없다. 게다가 이 나라는 기후가 매우 습하기 때문에 음식물이 금방 부패한다.
그리고 취할 정도로 술을 마시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임금이나 영의정도 공공연히 폭음을 한다. [15] 술에 취하면 정신을 잃고 바닥에 뒹굴거나, 술을 깨기 위해 잠을 잔다. 그래도 아무도 놀라거나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고, 혼자 쉬도록 내버려둔다. 우리 눈으로 볼 때 이것은 큰 타락이다. 그러나 이 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관습이다. 그래서 허용되며 아주 고상한 일이 된다.] 라고 기록할 정도로 체구가 큰 서양인의 눈으로 봐도 조선 사람들이 많이 먹었던 것
그리고 '새참 문화'만 봐도 조선시대에 농민들이 얼마나 자주 수시로 영양분을 채워 넣었는지 짐작이 가능하고
제사용 제기로 쓰는 놋으로 된 밥그릇 사이즈가 당시 성인들 표준 밥그릇 사이즈였음.
박정희 정권 때 밥그릇을 줄여야 덜 먹지 싶어서 식당에서 쓰는 스뎅 밥그릇 사이즈를 줄여서 표준으로 지정할 정도였고.
임진왜란에 대해 오판을 하게 된 원인 중 하나가 왜가 가져온 군량미 양이 조선 기준으론 전쟁을 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한달치 밖에 안되는 수준이라 얘들이 그냥 잠깐 왔다 가려나보다 했기 때문임.
지금도 그 먹성은 DNA를 통해 내려와서 한국인이 동아시아에선 농산물, 수산물, 육류 가리지 않고 가장 많이 먹음.
이런 거 저런 거 다 따져 보면
조선 사람들이 일단 먹어치우는 상상초월의 먹성이 보릿고개가 온 주요 요인 중의 하나라고 봐야 됨
[@ddsx]
지1랄마 사대는 어디까지나 형식적이라 중원왕조들도 조선을 엄연히 독립국이라 인식했고 조공역시 일종의 공무역 역할을 하면서 실질적으로 조선에게 더 이득이 되어서 조선이 더 적극적이었다. 말하자면 조공을 할 때마다 조선입장에서는 대규모 무역흑자라는 얘기지. 물론 명청 초기에 조선에게 상당한 조공 부담을 지운건 사실이지만 그건 지네들 왕조가 설립된지 초기라 정세안정을 위해서 조선을 견제하기 위한게 주 목적이었지. 니가 조선족이라고 얘기하지 않겠다. 실제로도 이따위로 편협하게 역사를 해석하는 한국인들이 존재하거든. 그 사실이 참으로 통탄 스럽다.
짱깨싫어하잖아. 애국보수가 뭐하는건지..
언제부터인가 반대를위한반대나 쳐하고 일안하니 틀니압수3주
조선시대에 명나라 사신 내려온다 하면 왕족(왕세자) 실세 고위 관료들이 국경 앞까지 직접 나가서 사신 영접함
주요 행선지마다 그 지방 곳간을 털어서라도 최고 호화스러운 잔치 열어줌
때되면 금혼령 내려서 만 13세 ~ 25세 처녀들 강제 착출하여 공녀로 보냄 사신들 성 노리개 역할로도 많이 보냈음
태종 ~ 세종 까지 공식 기록만 114명 공녀 착출에 반발하거나 일부러 몸에 상처를 낸 경우 중형을 선고받고 전 재산 몰수
천자의 명을 받을었으니 우리의 명령은 천자의 명령과 다름없다는 오만방자한 사신들 요구조건 맞춰준다고 온갖 뇌물과 진귀한 상품들 금, 은 같은 귀금속들도 갖다바침
1429년엔 명 사신이 챙겨간 선물, 뇌물 궤짝만 200짝 전부 다 조선인 인부들이 운반했고 그 행렬만 수 km
말 안들으면 조선인 인부들 때려죽이는것도 비일비재
그나마 인조가 땅에 대가리 찍게 만든 청나라 시대에 조공은 줄어들었고 공녀는 청나라 초기 32명 보낸거에서 끝
만세는 대국(명나라) 만 쓸수있는 말이라 하여 만세를 만세라 못하고 천세라고 했음
새로운 왕이 집권할때마다 명 황제에게 사신 보내서 보고하고 명 활제가 인정해야 왕으로써 인정
한글을 처음 만들었을때 명나라처럼 한문 안쓰면 대국을 거스르는 일이라 하여 반대하고 들어일어난 문무백관들
국가의 뿌리이자 근본이라는 왕과 왕세자가 사신이 칙서를 낭독할때 꿇어엎드리고 머리를 조아리며 들어야 했으니
사실상 식민지가 아니면 뭐였단 말인가?
그리고 이 게시글은 조선 이전의 삼국시대 남북국시대 고려시대를 다 중국의 역사라고 주장하며 세계에 사기를 치는 동북공정에 대한 게시물인데 조선이 사실상 식민지였다고 본다는 코멘트는 의도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의도가 잘못 해석되어 이상한 의미로도 해석이 진행될 수 도 있으니 수정.보완하시는게 어떨까요?
조선 초기엔 그랬으나 이후에 명나라 황제가 인정을 해야 왕으로써 인정을 한다기보단
지금으로 치면 UN가입과 유사한 형태였음.
UN에서 가입신청 넣고 승인 내려주는 것을 UN에 대한 식민지 청원이라고 함?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공물 보내면 명나라는 그에 몇배는 되는 보답을 내리는 형태의 '공무역'이었음.
태종 때는 무슨 꺼리만 있다 싶으면 공물을 보내버리니까
명나라: 조선은 그만 보내셈. 명 황실 재산 거덜나겠음.
태종:ㄴㄴ 더 보낼 거임. 님네 황제 생일이랑 님 황제 엄마 생일이랑 아무튼 꺼리만 있어 봐. 닥치고 보낼 거임
명나라:ㄴㄴ 조선은 공물 올 수 있는 횟수 정할 거니까 그 이상 보내면 안 받을 거임.
되도록이면 보내지 마셈. 님들 성의 너무 부담스러움
이라고 기록되어 있음
지금의 대한민국이 미국의 식민지가 아니듯
조선의 명나라에 대한 사대라는 것은 강대국을 이용하여 이득을 챙기기 위한
실리에 기반한 외교라고 보는 게 객관적인 시각일 거.
당신의 기술력으로는 지금처럼 저수지를 많이 건설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인 것이 기술적인 이유고
조선 사람들이 먹어대는 먹성이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먹는 것이 실제적인 이유라고 봐야 됨.
선교사들이 본 조선사람 먹성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다식에 대해서는 대신과 평민의 구별이 없다. 조선 사람들은 많이 먹는 것이 곧 명예로운 것으로 여기며, 식사의 질 보다는 양을 중시한다. 조선 사람들은 식사를 하면서 수다를 떠는 법이 없다. 노동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식사량은 1리터의 쌀밥으로, 이는 아주 큰 사발을 꽉 채운다. 각자가 한 사발씩을 다 먹어치워도 충분하지 않으며, 계속 먹을 준비가 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2~3인분 이상을 쉽게 먹어치운다. 우리 신자들 중의 한 사람은 나이가 30세에서 45세 가량 되는데, 그는 어떤 내기에서 7인분까지 먹었다. 이것은 그가 마신 막걸리 사발의 수는 계산하지 않은 것이다. 64세에서 65세가 된 어느 노인은 식욕이 없다 하면서도 다섯 사발을 비웠다. 조선 사람들은 열 사발을 감당하는 자를 장사라고 부른다.
소를 잡을 일이 있어 쇠고기가 마음껏 제공되면 아무도 고기로 꽉찬 접시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과일을 대접할 경우, 예를 들어 큰 복숭아를 내놓을 때에 가장 절제하는 사람도 10개 정도는 먹으며, 종종 30개, 40개, 50개까지 먹는 사람도 있다. 참외를 먹을 경우 보통 10개 정도 먹지만 때때로 20개나 30개를 먹어치우기도 한다.
조선의 어머니들은, 아이의 배를 손으로 두들겨 보면서 뱃속이 가득해지는 최후까지 밥을 채워 넣는다. 때때로 숟가락 자루로 아이의 배를 두드려 보다가 속이 꽉 찼을 때에 비로소 밥 먹이는 것을 중단한다. 누군가를 잘 대접해야 할 때는 닭 1마리를 통째로 내놓는다. 아무도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말할 필요도 없이 각자는 그것을 다 먹어치운다.[14] 쇠고기나 개고기도 큼직하게 썰어서 양껏 내놓는다. 그래야만 사람들은 고기를 먹었다고 여긴다. 특히 곱창과 생선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요리이다. 하지만 조선인들이 이를 식탁에 올리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보자마자 먹어치운다. 왜냐하면 조선인들은 자제할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조선인들의 집에는 비축식량이 없으며, 손에 넣는 즉시 먹어치운다. 물론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찬장이나 식량 창고가 없으므로 음식을 보관할 수 없다. 게다가 이 나라는 기후가 매우 습하기 때문에 음식물이 금방 부패한다.
그리고 취할 정도로 술을 마시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임금이나 영의정도 공공연히 폭음을 한다. [15] 술에 취하면 정신을 잃고 바닥에 뒹굴거나, 술을 깨기 위해 잠을 잔다. 그래도 아무도 놀라거나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고, 혼자 쉬도록 내버려둔다. 우리 눈으로 볼 때 이것은 큰 타락이다. 그러나 이 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관습이다. 그래서 허용되며 아주 고상한 일이 된다.] 라고 기록할 정도로 체구가 큰 서양인의 눈으로 봐도 조선 사람들이 많이 먹었던 것
그리고 '새참 문화'만 봐도 조선시대에 농민들이 얼마나 자주 수시로 영양분을 채워 넣었는지 짐작이 가능하고
제사용 제기로 쓰는 놋으로 된 밥그릇 사이즈가 당시 성인들 표준 밥그릇 사이즈였음.
박정희 정권 때 밥그릇을 줄여야 덜 먹지 싶어서 식당에서 쓰는 스뎅 밥그릇 사이즈를 줄여서 표준으로 지정할 정도였고.
임진왜란에 대해 오판을 하게 된 원인 중 하나가 왜가 가져온 군량미 양이 조선 기준으론 전쟁을 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한달치 밖에 안되는 수준이라 얘들이 그냥 잠깐 왔다 가려나보다 했기 때문임.
지금도 그 먹성은 DNA를 통해 내려와서 한국인이 동아시아에선 농산물, 수산물, 육류 가리지 않고 가장 많이 먹음.
이런 거 저런 거 다 따져 보면
조선 사람들이 일단 먹어치우는 상상초월의 먹성이 보릿고개가 온 주요 요인 중의 하나라고 봐야 됨
그냥 식민지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