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에서 처형대 위 결박된 시삼네스는 산 채로 그 피부가 벗겨지고 있다. 살아 있으나 죽느니보다 못한 시삼네스의 고통 그득한 표정과 사형 집행인들의 잔인한 손놀림이 그럴 수 없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캄비세스는 그렇게 벗겨낸 살가죽을 시삼네스가 앉아 있던 의자에 깔게 한 뒤 시삼네스의 아들을 불러서 말한다.
“이제부터 네가 재판관이다. 저 자리에 앉아라. 네 아비의 살가죽 위에서 네가 어떻게 판결할지를 항상 고민하라.”
이게 ‘캄비세스의 재판’이라고 불리는 그림이다.
캄비세스는 왜 그렇게 유달리 끔찍하고 곱절로 고통스러운 방식의 처벌을 사용했을까? 그건 바로 재판관의 부정이라는 범죄가 그만큼 치명적이고 무거운 범죄라는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였을 거다.
판관(判官)들의 판결은 곧 법으로서 사람들의 일상을 규정하는 힘을 지니는데, 돈이나 사적인 관계나 기타 등등 때문에 공정하지 못한 판결을 내는 것은 그 사회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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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자기 권력 유지에 힘쓰는 집단
최소한 헌법개정이 한 번은 돼야 함.
지금 503 때 양승태 사법농단 일어난 거
수사 어떻게 진행되는지 아는 사람 있음?
법원이나 법관대상으로 수색영장 신청한거
90% 이상 기각 때려서 수사 자체를 못하게 함.
심지어 최종적으로 그걸 재판하는 것도 판사들이고.
얘네를 견제하려면 미국처럼 배심원단을 도입하거나 해야함.
지들끼리 서로 감싸주기나 하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