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딸아이가 영화 찍는다고 해서, 돈을 1000만원을 줬거든. 10분짜리 만드는데 그렇게 든대.
현장에 오라고 해서 가봤더니 한 놈이 막대기에 걸레 같은 걸 달아서 들고 있더라고. 그게 마이크래.
그놈이 만든 영화를 봤어. 제목이 ‘일상에 대한 구토’야. 거기 나오는 아빠가 일상에 매몰돼가지고 머리맡에 담배꽁초가 가득한 재떨이가 있고 관념과 추상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거야.
나중에 자막에 ‘아버지 고맙습니다’라고 뜨더라고.
돈 받아다가 지들끼리 논 거야. 신바람이 나니까. 그리고 영상이 나오잖아. 소설은 영상이 안 나오지.
친구놈들 봐도 인문적 소양이 없어. 저런 놈들이 어떻게 뭘 만드나. 신뢰가 안 가. 대학에서 배운 게 해체주의래. 탈근대, 포스트모던 해체주의, 그런 게 다 뭐냐 그랬더니 가족을 해체하고 정치제도를 해체해서 인간을 해방시켜야 한다고 그래.
가족을 해체한다면서 1000만원은 왜 나한테 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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