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의난이 성공했으면 국가기반이 재정립되는 과정의 혼란한 틈을 타 외세가 침략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새로 생긴 체제는 응집력을 희석시켰을 것이고, 이미 역사적으로 증명이 된 공식이 나와있죠. 내부병력으로 정리가 어렵던 동학군을 학살한 사례만봐도 국내의 군사적요인으로 외세를 막기가 어려웠을 가능성이 높아요. 결국 동맹국을 끌어들이거나 외세를 끌어들였어야 할 겁니다. 그냥 한국땅 난이도가 너무 높았음..
개인적으로는 안으로 내실을 다진후에 개화를 진행하고자 했던 대원군과 빠르게 적당히 내줄건 내주고 이익을 가져오는 메이지유신을 본받고자했던 개화파들의 내적갈등으로 조선이란 나라는 이도저도 아닌 선택을 강요받게 된 것이 가장 큰 요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구본길]
국모=다른게 아니고 그냥 왕비를 말하는거임. 민비는 어쨌든 정실 왕후(대한제국이 되었으니 황후)로 책봉된건 맞아서 비라고 부르는거는 일본 놈들이나 조센징 까내리려고 하는 행동임. 뭐 태종은 형제들 다 죽인 파렴치한 놈이라 왕이 아니냐? 세조는 조카 잡아 죽인 놈이라 왕이 아님? 민비가 나라 말아먹은 원흉이든 뭐든 역사적 평가는 역사적인 평가고, 올바른 호칭은 황후가 맞음.
애초에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난 이유가 민비와 외척이 군사들에게 봉급을 제때 지급하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었고 민비와 무당 진령군에 의해 일어난 국정농단이 저 사단을 만든거잖어
명성왕후라고 부르지말자
그리고 동학농민운동의 목적이 왕위를 찬탈하는 것이 아니고 민비와 민씨일가를 몰아내는 것이 목적이었고 외세가 들어오자 그걸 막기위해 스스로 조직을 해체했는데 동학농민운동을 폄하하지 말자
[@반지성주의가낳은괘물]
민비 타령 지겹다. 님은 세조가 조카 잡아 족친 놈이라서 혼자 수양대군이라고 부름? 뭐 태종은 형제들 다 잡아죽였으니 왕도 아님? 도덕적인 평가와 역사적 평가는 따로고 호칭은 황후가 맞지. 정식으로 책봉된 황후를 왜 쪽바리들 마냥 민비라고 격하해서 부르려고 안달임? 엄연히 고종의 정실 부인이고, 조선이 대한제국이 되었으니 황후가 맞음. 왕후라고 격하시키려면 고종도 황제라고 하면 안되지. 정리하자면 민비라고 부르는 놈들은 쪽바리들이 조선을 낮잡아 부르는거랑 똑같은 행동하는 거고, 황후라고 부르는게 맞음. 다만 명성황후는 나라 망친 개ㅆ년이었던건 맞음.
나도 보태죠.
1. 동학전쟁 때 청군 끌어들인게 잘못이었다고 주장하는데 1882년 임오군란, 1884년 갑신정변 때도 청나라 끌어들여 수습한건 어떻게 설명할까?
2. 동학에 어떻게 대응하는게 최선이었을까? 동학을 두고 과거에는 동학민란으로 부르다 1980년대에는 갑오농민전쟁이니 동학운동이니 하는 식으로 바꿔 불러야 한다고 했음. 신분제 사회 구조를 동학만으로 전부 바꿀 수 있었을까? 갑오개혁에서 노비제를 폐지했으나 식민지 시기는 물론이고 광복이후 상당기간 신분의식은 사라지지 않았음. 그럼 신분의식을 갖고 있던 사람들을 동학을 이유로 다 죽였어야 했을까?
3. 고종이 대처를 잘 못했다고 했는데 그러면 고종이 어떻게 대처해야 했는지를 글쓴이는 제시하지 않고 있음. 좀더 심하게 말하면 멸망의 원인이 고종에게 있다고만 얘기했지 그 대안은 말하지 않음. 그저 고종 탓만 하는 꼴임.
4. 분단 과정도 잘못 이해하고 있음.
김일성이 소련을 등에 업고 분단시켰다고 말하는데 그럼 '카이로회담', '얄타회담'(관동군과 본토군의 무장해제 방법, 조선의 전후 처리 등이 결의됨)과 그 원인이었던'일본군 대본영의 방위계획(38도 선을 경계로 이북은 관동군 관할, 이남은 일본 대본영 관할) 등은 전혀 언급되지 않음.
5. 가장 궁금한건데 이렇게 잘 알지도 못하면서 본문을 작성한 이유가 무엇인가?
"제대로 대처하라"는게 아마도 그 이유일텐데 특정 정치세력을 지지하라고 말하고 싶었나 봄. 지지 정당과 다른 정당에 대해 매국 프레임을 씌우고 싶은게 작성의도였다면 본문은 작성하지 않는게 나음. 그냥 나 지지 정당이 이거고 나와 다른 사람들은 다 악마다 그리 말하셈. 그게 바로 정치불신과 대안부재, 편가르기 정치병 환자들을 양산하는 방법이니까.
덧) 쓰고 보니 상당히 거칠고 가르치듯이 썼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글을 올리는 이유는 결론 없이 생각이 다른 상대방을 비방하려는 의도가 보였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 글도 그리 보였다면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새로 생긴 체제는 응집력을 희석시켰을 것이고, 이미 역사적으로 증명이 된 공식이 나와있죠. 내부병력으로 정리가 어렵던 동학군을 학살한 사례만봐도 국내의 군사적요인으로 외세를 막기가 어려웠을 가능성이 높아요. 결국 동맹국을 끌어들이거나 외세를 끌어들였어야 할 겁니다. 그냥 한국땅 난이도가 너무 높았음..
개인적으로는 안으로 내실을 다진후에 개화를 진행하고자 했던 대원군과 빠르게 적당히 내줄건 내주고 이익을 가져오는 메이지유신을 본받고자했던 개화파들의 내적갈등으로 조선이란 나라는 이도저도 아닌 선택을 강요받게 된 것이 가장 큰 요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저 역사속에서 실수를 되풀이하지않고자 하는것이
할수있는 전부지요.
정조의 이른 죽음이나 대원군의 쇄국, 개화파의 주장 등 바로잡을 타이밍이 어긋난건데 그 타이밍에 세계정세나 주변국의 변화가 너무 빨랐다고 생각함
명성왕후라고 부르지말자
그리고 동학농민운동의 목적이 왕위를 찬탈하는 것이 아니고 민비와 민씨일가를 몰아내는 것이 목적이었고 외세가 들어오자 그걸 막기위해 스스로 조직을 해체했는데 동학농민운동을 폄하하지 말자
임오군란도 그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이라고 생각함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농민운동은 하나의 맥락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함
필요할때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는게 명분인지라..
일본이 한반도 먹을라고 마음 먹은 야욕의 수준은 무슨 사건 하나 발생하고 안하고로 넘어갈 수준이 아니었음
1. 동학전쟁 때 청군 끌어들인게 잘못이었다고 주장하는데 1882년 임오군란, 1884년 갑신정변 때도 청나라 끌어들여 수습한건 어떻게 설명할까?
2. 동학에 어떻게 대응하는게 최선이었을까? 동학을 두고 과거에는 동학민란으로 부르다 1980년대에는 갑오농민전쟁이니 동학운동이니 하는 식으로 바꿔 불러야 한다고 했음. 신분제 사회 구조를 동학만으로 전부 바꿀 수 있었을까? 갑오개혁에서 노비제를 폐지했으나 식민지 시기는 물론이고 광복이후 상당기간 신분의식은 사라지지 않았음. 그럼 신분의식을 갖고 있던 사람들을 동학을 이유로 다 죽였어야 했을까?
3. 고종이 대처를 잘 못했다고 했는데 그러면 고종이 어떻게 대처해야 했는지를 글쓴이는 제시하지 않고 있음. 좀더 심하게 말하면 멸망의 원인이 고종에게 있다고만 얘기했지 그 대안은 말하지 않음. 그저 고종 탓만 하는 꼴임.
4. 분단 과정도 잘못 이해하고 있음.
김일성이 소련을 등에 업고 분단시켰다고 말하는데 그럼 '카이로회담', '얄타회담'(관동군과 본토군의 무장해제 방법, 조선의 전후 처리 등이 결의됨)과 그 원인이었던'일본군 대본영의 방위계획(38도 선을 경계로 이북은 관동군 관할, 이남은 일본 대본영 관할) 등은 전혀 언급되지 않음.
5. 가장 궁금한건데 이렇게 잘 알지도 못하면서 본문을 작성한 이유가 무엇인가?
"제대로 대처하라"는게 아마도 그 이유일텐데 특정 정치세력을 지지하라고 말하고 싶었나 봄. 지지 정당과 다른 정당에 대해 매국 프레임을 씌우고 싶은게 작성의도였다면 본문은 작성하지 않는게 나음. 그냥 나 지지 정당이 이거고 나와 다른 사람들은 다 악마다 그리 말하셈. 그게 바로 정치불신과 대안부재, 편가르기 정치병 환자들을 양산하는 방법이니까.
덧) 쓰고 보니 상당히 거칠고 가르치듯이 썼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글을 올리는 이유는 결론 없이 생각이 다른 상대방을 비방하려는 의도가 보였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 글도 그리 보였다면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