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문제지 공장식 사육이 환경오염에 거의 크리티컬 때리는건 사실인데.... 건강이 아니라 인간이 안 뒤질려면 방안을 마련해야함 채식주위자들 개 쌈소리 말고 그냥 우리가쓰는 옷 공산품 음식 에너지 전부
빙하기 끝나고 60만년동안 1도 오름 20세기 들어와서 1도 오름
지구가 어딜 향해서 가는지 뻔히 보이는데
핵은 눈앞에 바로 보이니 목숨 걸고 자제하고 다 때려 잡는데 환경오염은 참 힘든듯
육식이 폭력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은 고통을 가하는가에 관한 문제이지. 홍승규가 말하는 인간의 권리와 동물의 권리가 다르다는 것은 반박가능성이 너무 높음. 인간과 동물 모두 고통(조직의 전형적인 손상)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것. 왜냐하면 인간도 다른 종에게 지배받는 약자의 처지였다면 고통을 기피하고 저항했을테니까.
따라서 다른 생명을 죽이되 고통없이 죽여야 최소한 폭력이 아닐 수 있다고 봄. 사실 이런 프레임은 타자(고통을 느끼는 모든 동물)의 이익을 배려할 줄 아는 생명체에게만 유효하고
그렇지 않은 생명체에겐 강요할 수 없음. (예컨대 사자가 토끼를 잡아먹는 것)
약자의 권리는 모두 존중받을 수 있는가? 즉 경제적 약자의 육식은 존중받아야 하는가? 물론 받을 수 있지만, 그 고기가 된 생명체의 권리(고통을 받지 말아야 할 권리나 생명을 빼앗기지 말아야 할 권리)를 고려하지 않는 프레임에서는 그렇지. 따라서 최대한 고통없이 동물이 사육되고 고통없이 생을 마감시켜서 인간의 식탁에 오르게 한다면 생명권의 문제는 아쉽지만 인간의 육식이 허용될만하다고 봄.
인간은 뛰어나다 못해 다른 종의 되도 않는 권리까지 오지랖을 넓힌 초월적 공감능력을 지닌 종인거임. 그냥 저런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선택을 한 사람들 마저도 존중할수밖에 없음. 비건이 타인에게 비건을 강요. 다른 육식문화를 야만적인 하위문화로 취급하지 않고 혼자 조용히 실천한다면야 참견할 이유도 권리도 마찬가지로 없음. 애초에 인간 존재 자체가 효율과 합리만 따졌으면 여기까지 발전하지도 않았음.
장자의 제물론과 같은 무위자연 계열 도가 사상을 좋아하는데, 말하자면 인간이 자연을 거스르는 인간만의 인위적인 모순점들 자체가, 오히려 자연속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연의 포지션이 아닌가 싶음.
[@관철수]
채식주의자가 동물은 아니어도 생명있는 식물을 먹는다고 해서 그들의 주장이 틀렸다거나 타당하지 않다고 보는 건 오류.
넓은 의미에서 동식물의 생명권을 침해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도덕적 자격은 없을지 몰라도 좁은 의미에서의 생명권(동물 생명권)을 존중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별개의 논의 대상임. 예를 들어 도둑도 도둑질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럴 자격이 없긴 하지만 도둑질하지 말라는 명제 자체는 받아들여질만 함.
다른 사람들이 채식 안한다고 ㅈㄹ 안했으면 좋겠음.
특히나 지 새끼들이 미성년자일 때 아동학대하듯 채식주의 강요하거나 세뇌하는 짓거리도 안했으면 싶고
빙하기 끝나고 60만년동안 1도 오름 20세기 들어와서 1도 오름
지구가 어딜 향해서 가는지 뻔히 보이는데
핵은 눈앞에 바로 보이니 목숨 걸고 자제하고 다 때려 잡는데 환경오염은 참 힘든듯
진정한 친환경은 존재하지 않음
지구를 위해서는 인류 종말이 답
따라서 다른 생명을 죽이되 고통없이 죽여야 최소한 폭력이 아닐 수 있다고 봄. 사실 이런 프레임은 타자(고통을 느끼는 모든 동물)의 이익을 배려할 줄 아는 생명체에게만 유효하고
그렇지 않은 생명체에겐 강요할 수 없음. (예컨대 사자가 토끼를 잡아먹는 것)
장자의 제물론과 같은 무위자연 계열 도가 사상을 좋아하는데, 말하자면 인간이 자연을 거스르는 인간만의 인위적인 모순점들 자체가, 오히려 자연속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연의 포지션이 아닌가 싶음.
넓은 의미에서 동식물의 생명권을 침해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도덕적 자격은 없을지 몰라도 좁은 의미에서의 생명권(동물 생명권)을 존중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별개의 논의 대상임. 예를 들어 도둑도 도둑질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럴 자격이 없긴 하지만 도둑질하지 말라는 명제 자체는 받아들여질만 함.